조금 늦게 18어게인 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 현재 방영 중이죠. 4회까지 공개된 시점에 1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드라마의 기본 설정 및 장르
우선 이 드라마는 판타지 로코 성장 드라마입니다. 뭔가 잔뜩 갖다 붙인 느낌이지만 사실입니다.
드라마의 기본 설정은 30대 후반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18살의 자신으로 젊어진다면? 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토리의 큰 줄기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주된 플롯 중 하나는 너무나 사랑해 결혼했지만, 어려운 현실에 부딪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이 사랑을 회복해 가는 이야기를 그려낼 겁니다. 현재까지는 상처로 인해 이혼까지 한 상황이지만, 중간 중간 서로에게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고 힘이 되는 존재였는지를 깨달아가기 때문에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여러가지 인물들의 성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녀 주인공의 쌍둥이 자녀의 성장, 그리고 그 친구의 성장, 이제는 학생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성장, 그리고 새롭게 꿈을 이뤄가는 어머니의 성장까지.
이 드라마는 사실 많은 작품에서 다뤘던 타임슬립이라는 이제는 식상한 소재를 가져와서 뻔한 성장스토리와 당연히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좌충우돌 상황을 통해 재미있게 그려나가는 뻔한 드라마입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 재미있습니다.
정확히는 재미 있었습니다.
억지스러운 신파가 작품을 망치는 방법
초반 이 드라마는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젊어진 아빠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통해서 꽤나 많은 웃음포인트를 가지고 있고, 꽤나 제대로 동작합니다. 특히 배우 이도현은 첫 주연작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고등학생 아들을 둔 아빠의 심리를 꽤나 그럴싸하게 연기해 냅니다.
본인의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그 나이 아저씨의 능글맞음, 어린 학생들을 대하는 시선 등 매우 인상적이면서도 재미있게 잘 표현해냈죠.
그런데, 회를 거듭하게 되면서 드라마의 단점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한국 극화(드라마든 영화든)의 치명적 단점 중 하나인 '과도하고 개연성 없는 신파'의 삽입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개연성이 부족한 신파의 삽입이 단지 스토리의 개연성 부족을 유발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공감을 하고 몰입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캐릭터'의 상황과 생각에 공감을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신파 설정을 맞추기 위해서 이 캐릭터를 붕괴시키는 어리석은 선택을 합니다.
남녀 주인공인 홍대영과 정다정은 고교시절 사랑하는 사이였고, 홍대영은 장래가 유망한 농구 선수, 정다정은 아나운서가 꿈인 똑똑한 방송반 학생이었는데, 학창시절 임신을 하는 실수로 인해 이른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홍대영은 장래가 달린 중요한 시합을 포기하고 여자친구에게 달려가게 되죠. 그 이후 홍대영은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가족을 부양하게 되고, 정다정은 아이의 양육을 위해 대학을 늦게 진학하는 선택을 하죠.
사실 이 부분부터 조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농구 재능을 그 정도로 인정받고 있었다면, 대학이 아닌 프로농구단으로 직행했으면 될 일 입니다. 그걸 포기하고 막노동부터 시작을 하는 설정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죠. 하지만, 이건 그냥 드라마의 기본 설정이고, 뒤에 나올 이야기를 그려갈 시작점이기 때문에 쿨하게 넘어가 줍니다.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 지나친 설정을 넣기 시작합니다. 양가 부모가 아이를 지우라는 권유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홍대영은 그 일로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지고 18살 학생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무려 18년 동안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아온 것으로 나옵니다. 문제는 여기서 나옵니다. 그 사이에 그 아버지는 수시로 집에 와서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을 살뜰이 챙깁니다. 아들 모르게 말이죠.
그리고, 정다정도 역시 시아버지를 잘 챙기죠. 남편 몰래. 무려 18년 동안 말이죠. 심지어 손자, 손녀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좋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이 정도인데 남편은 그 사실을 18년 동안 눈치조차 못 챈다?
다음은 주인공의 캐릭터 입니다. 결국 둘은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유는 동창회 술자리에서 벌어진 홍대영의 실수입니다.
물론 그 실수가 대단히 심각한 실수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큰 결정을 하면서 술로 인해 기억조차 없는 홍대영에게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수시로 나오는 말이 '넌 우리가(정다정과 아이들까지) 필요할 때 없었어' 라는 말 입니다.
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의 비애인 '일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없었는데,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와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라는 설정. 매우 뻔하고 익숙한 설정이죠. 문제는 중간 중간 에피소드처럼 나오는 씬들에서 홍대영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거죠.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는 정다정의 연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응원하고, 집안 청소를 하는 모습, 중간 중간 둘만의 추억의 공간에서 나눴던 더 이상 다정할 수 없는 대화들. 아무리 일이 바쁘다 한들 맨날 집에서 술만 마시고 가족의 일은 나몰라라 하며 힘들고 바쁘다는 핑계만 대는 남자의 캐릭터가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저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그럴 수가 없거든요. '또한 필요할 때 옆에 없었다' 라는 말과 정반대되는 정말 필요할 때는 항상 곁에 있었던 홍대영을 추억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대체 어떻게 공감을 하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
그 밖에도 이런 설정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작가와 감독이 두 사람이 다른 관점에서 자신들의 지난 날을 돌아보며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어서 그 반대가 되는 설정들을 넣은 것은 알겠지만, 그것도 캐릭터에 일관성은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공감이 가능하거든요.
정다정이 뒤늦게 꿈이었던 아나운서 입사에 성공한 이후에 벌어지는 일도 시대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소위 '블라인드' 면접으로 나이를 극복하고 온전한 실력으로 합격을 하게 되는데요. 방송사 보도국장이라는 사람은 '아줌마'가 아나운서 채용 1등이라는 건 말이 안된다며, 수습기간 안에 알아서 그만두게 만들라는 말을 합니다. 이거 바보 아닙니까? 온 국민에게 '블라인드' 면접을 해서, 아줌마가 1등을 했으면, 회사 마케팅 용도로 얼마나 써먹기 좋습니까? 이런 굴러들어온 복을 차 버린다고요?
그리고, 대중들의 반응도 웃깁니다. 방송에서 돌발상황을 능숙하게 넘기면서 실력을 보여주자, '이상형'이네 뭐네 하면서 인기 급상승하다가 단지 '아줌마' 라는 이유로 선플 하나 없이 오로지 악플만 넘쳐나는 상황이 됩니다. 정말 2020년 현재 시점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보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작가와 감독은 시대를 읽는 눈이 없는 겁니다. 뒤늦게 꿈을 이뤘지만, 그 꿈을 지키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아줌마' 라는 것을 홍보 수단으로만 이용해먹고, 실상 좋은 프로그램에는 섭외조차 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줬다면 훨씬 설득력 있고 좋았을 겁니다.
이제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드라마 그래도 계속 지켜보고 있는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이 극의 가장 큰 줄기인 '코미디' 설정이 여전히 재미있고 유쾌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억지 신파 넣지 않고도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 더 이상 망치지 말고,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상황 전개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드라마 응원하며 계속 지켜보려고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