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소년단 이후 가장 센세이셔널한 K-Pop씬의 사건이라면 이번 주 빌보드 Hot100 차트에서 19위에 랭크된 이름도 생소한 Fifty Fifty라는 걸그룹의 Cupid 일 겁니다. 오늘은 그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보겠습니다.
중소기획사의 당찬 기획의 승리
걸그룹 Fifty Fifty는 어트랙트(Attrakt)라는 생소한 이름의 기획사 소속입니다. 심지어 이 회사의 첫 걸그룹이죠. 그런데, 그 아티스트가 발매한 두번째 앨범 (첫번째는 The Fifty 라는 4곡을 담은 EP 앨범이고, 두번째는 Cupid의 3가지 버전을 담은 싱글입니다)이 말 그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 입니다. 대형 기획사라서 막강한 마케팅으로 한 것도 아니고, 강력한 팬덤이 있어서 초동 발매 앨범 싹쓸이로 올린 순위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순도 100% 인기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큰데요. 그럼 이 기획사는 어떤 마인드로 기획을 한 것 일까요?
일단, 이 기획사의 대표인 전홍준 대표는 여러 아티스트의 앨범을 제작한 경력은 있지만, 아이돌 제작 경험은 없는 즉, 현재 K-Pop씬의 메이저 영역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면서 도움을 청한 인물은 안성일 프로듀서입니다. 안성일 프로듀서는 1세대 아이돌을 제작한 경력은 있지만, 현업 일선에서 살짝 물러나 있던 그 역시 현 시점의 아이돌 마케팅과 시장에 대한 경험은 부족해 보입니다. 언뜻 보면 왜 도움을 청했는지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조합입니다. 일반적인 공식대로라면 현재 잘 나가는 아이돌 프로듀서에게 부탁을 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말이죠. 아마도, 두 분 사이에 이미 친분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도 되고, 안성일 프로듀서의 역량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고 생각이 되긴 하지만, 겉모습만 봐서는 쉽게 납득이 되는 조합은 아니죠.
그렇게 안성일 프로듀서는 컨설팅 의뢰를 받고, '거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고, 전홍준 대표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전략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국내 시장이 아닌 글로벌을 처음부터 목표로 한다. 그것도 해외 K-Pop 팬이 아닌 K-pop을 듣지 않는 해외의 일반 리스너들을 겨냥한다" 어찌 보면 터무니없이 맹랑한 포부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이미 수십년간 해외 시장에서 특히 북미시장에서 영/미권 음악이 아닌 음악이 성공한 사례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 처음부터 그것을 노린다고? 그런데, 이 전략이 보기 좋게 성공한 것이죠.
누가 들어도 질리지 않고 피로감이 없는 음악을 만들자
해외의 불특정 다수를 타겟을 한 것에 맞춰서 음악부터 잡아나가기 시작합니다. Fifty Fifty의 노래들을 들어보면, 최근 K-Pop에서 들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바로 '편안함'인데요. 가장 많이 신경쓴 부분이 피로감이 없는 이지리스닝 음악을 추구했다고 해요. 이유는 팬덤이 없이 대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려면 매니악한 성향이나 탐구가 필요한 '세계관'이나 특이한 가사를 가지고 천천히 빌드업을 해 나가는 현재 K-Pop씬에서 유행하는 방식의 투자는 어울리지 않았고, 그렇게 할 재정적인 여유도 없었다고 합니다. 즉 돈이 없어서 국내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넓은 시장으로 나가기로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쉽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쉽고 진정성있는 편안한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 것이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래 들어도 피로하지 않고 배경음악처럼 깔려도 좋은 음악을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는 현재 K-Pop에서 유행하고 있는 스타일과는 정확히 반대의 지점에 있습니다.
현재 K-Pop은 하나같이 강렬한 사운드와 메인보컬의 지르는 파트, 그리고 래퍼들의 강렬한 일갈이 함께 섞이고 중간 중간 곡의 장르마저 바뀌는 복잡한 구성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죠. 그런데, Fifty Fifty는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정확히 반대의 시장을 공략한 겁니다. 실제로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빅히트를 기록중인 Cupid뿐 아니라 첫번째 앨범의 4곡도 그 성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적절한 컨셉에 신의 한 수. 영어버전 Cupid Twin Ver.
앞에서 언급한 컨셉은 사실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할 경우, 아무런 소득없이 국내에서조차 주목받지 못하고 끝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대적인 마케팅을 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기도 했지만, 자극적인 음악들로 가득한 국내 음악방송 무대에서 담백한 음악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그만큼 밋밋해보일 수 있기 때문에 눈에 띄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로 발매한 Cupid에 모든 가사를 영어로 채운 Twin Version을 포함하면서 그들의 음악행보에 반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소위 말해서 '틱톡으로 떴다'는 공식이 시작된 것인데요. 국내 아이돌 곡임에도 해외 틱토커를 비롯해 수 많은 숏폼 동영상 플랫폼에서 이들의 노래에 맞춘 챌린지 영상이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말 그대로 '이 노래가 무슨 노래야?' 라는 궁금증으로 뜨기 시작한 것이죠. 그렇게 Cupid라는 노래는 각종 차트에서 역주행을 시작합니다. 사실 역주행이라는 말이 뒤늦게 히트하는 노래를 의미하긴 하지만, K-Pop의 경우 특히 아이돌 노래들의 경우에는 발매 후 바로 1위를 하지 못하면 그 다음에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죠.
다른 K-Pop 아이돌과 반대의 경향을 보이는 차트 성적
국내 아이돌 그룹들의 빌보드 입성 스토리는 이제 매우 흔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빌보드 200 차트(앨범차트)에 진입하는 것은 이제 왠만한 인지도를 가진 K-Pop 아이돌이라면 다들 하는 일이 되어버렸으며,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은 Hot100 차트에 심심치않게 올라가곤 하죠. 그런데, 이들의 차트 성적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발매를 한 첫 주에 최상위에 위치하고 그 이후에는 점점 하락한다는 점이죠. 물론 요즘 시장이 빨라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렇게 되는데는 '초동 발매 앨범의 판매량'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K-pop아이돌의 팬덤 문화는 아주 독특하고 강력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이는 외국 팝스타들도 부러워하는 부분이죠. 강력한 팬덤은 강력한 구매로 이어지거든요. 아무튼 이들은 스타에 대한 의리로, 팬사인회등 혜택을 보는 확률을 높이기위한 수단으로 앨범을 한 사람이 많게는 100장 이상도 구매하는 열성적인 구매를 하게 되는데요. 이런 구매는 발매 첫 주에 집중되죠. 그래서 첫 주 순위가 가장 높게 나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이는 대중적인 인기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이런 문화가 없던 시절에는 차트에서 서서히 순위를 높여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첫 주에 1위로 데뷔하는 경우는 정말 강력한 인지도를 가진 일부 슈퍼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Fifty Fifty는 아주 착실하게 바닥부터 시작해서 순위를 차근차근 올려가며 현재 빌보드 Hot100(메인 차트)에서 19위에 자리하게 됩니다. Hot100 차트에 진입한 기간은 벌써 7주째네요. 이 정도면 싸이, 방탄과 블랙핑크를 제외하면 최장 기간이 아닌가 싶은데요. 이런 현상으로 볼 때 이들의 인기는 말 그대로 "진짜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K-Pop 공식을 버렸기에 얻을 수 있었던 K-Pop의 성공
이들의 성공에는 현재 K-Pop씬이 배워야 할 점으로 가득합니다. 한국은 대체적으로 유행이 매우 강력한 경향을 가집니다. 어떤 스타일이 뜬다고 하면 거의 모든 분야가 그 스타일을 따라가곤 하죠. K-Pop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음악 스타일이 뜬다면, 곧 그런 스타일의 음악들로 가득하고, 컨셉도 서로서로 참고하곤 하죠. 그런 성향이 현재의 K-Pop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외국에서도 들었을 때 바로 K-Pop임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이렇듯 다양성을 가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지루함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죠.
그런 와중에 중소기획사에서 당돌한 기획으로 K-Pop의 공식을 버리고 해외 시장에서 거대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과거 국내 음악이 세계에서 통하지 않았던 것은 언어적인 장벽 외에도 음악적 표현 특히 사운드 면에서 수준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재 K-Pop의 사운드와 음악적 기술의 수준은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이 되었고, 어디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즉 이제는 언어적인 장벽만 뛰어 넘는다면 K-Pop이 가지는 특수성 혹은 팬덤 문화의 힘이 아니어도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증명한 것이 바로 Fifty Fifty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국내 팝씬에도 획일화된 기획의 아이돌 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더 주목받고 세계 시장에도 알려지는 경우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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